(가) 전통사회에서 지배층에 속하는 한 개인이 일생 동안 자신을 위해 지었거나 남을 위해 저작한 글을 일정한 기준과 체계에 의해 모아서 책으로 간행한 것으로써 공리적(公利的) 성격 보다는 개인적 성격이 두드러지는 특징을 지니고 있는 기록물이다.
(나) 중국을 직접 방문하여 자신의 견문이나 감회, 의론 등을 기록한 작품이 가장 많이 전하는데 통상적으로 이러한 기록 을 '연행록'이라 지칭한다. 연행록에는 공적인 보고를 위해 작성된 것도 있으나 대체로 개인적인 저술이 많다.
(다) 공식적인 사행의 경우 매번 정해진 경로를 따라 왕복하였으나 간혹 표류나 표착으로 인해 쉽게 견문할 수 없는 지역들을 체험하기도 하고, 개인이 우연히 표류하여 중국, 유구, 안남 등지로 들어갔던 것을 남긴 기록도 있다.
(라) 고구려 한문학의 전통과 수준은 수(隋)나라와의 전투에서 을지문덕이 적장에게 지어주었다는 ( ) 시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신기한 책략은 천문을 끝까지 궁구했고 절묘한 책략은 땅의 이치 모두 꿰뚫었네 싸움마다 이겨서 공이 이미 아주 높으니 만족함을 알았거든 그치기를 바라노라'
(마) 책으로 발행된 개인의 창작물은 관계자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배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배포하는 범위나 원칙은 첫째, 향교나 서원 등 향촌 사회에서 으뜸으로 치는 공공단체를 우선으로 하며, 둘째, 학연과 혈연 등으로 저작자와 관련을 맺고 있는 문중의 종택(宗宅)이나 개인에게 모두 무료로 배포한다. 간행된 책을 받은 문중이나 개인은 당연히 소정의 성의를 표하는 것이 하나의 관례로 되어 있었다.
(바) 가을 밤 달 비치고 은하수는 밝은데, 나그네는 고향 생각 간절키만 하구나 긴 밤 홀로 앉아 시름에 겨워하는데, 이웃 아낙 다듬이 소리 홀연히 들리네 바람결 따라 끊어질 듯 들리는 소리, 밤 깊어 별 질 때까지 잠시도 멈추지 않네 조국을 떠난 후로는 듣지를 못했더니, 지금 타향에서 비슷한 소리를 듣는도다 그대의 방망이는 무거운지 가벼운지, 푸른 다듬돌 고른지 거친지 알 수 없으나 가녀리고 약한 몸은 구슬땀에 젖었고, 옥 같이 고운 팔도 지쳤음을 알겠노라 홑옷의 나그네를 응당 구하려 함인가, 규방의 외로운 시름 씻어보자고 함인가 그 모습 알 수 없어도 물어볼 수 없고, 부질없이 아득한 맘 원망만 끝이 없네
(사) 가을바람에 괴로이 읊조리기만 하는데 세상에는 나를 알아주는 이 거의 없네 한 밤중인 창밖에는 밤비만 내리는데 등불 앞의 내 마음은 만리를 달리누나(秋風惟苦吟 世路少知音 窓外三更雨 燈前萬里心)
(아) 과거에 책을 만들 때 본문의 둘레를 에워싸는 외곽의 테두리 선이 있다. 여기에는 경계선이 있으며, 한 쪽인 반엽(半葉)이 10행이며 각 행(每行)에 18~22자가 일반적이다.
(자) 비갠 언덕 위 풀빛은 더욱 푸른데 남포에서 임 보내는 구슬픈 노래 대동강 물이야 언제나 돼야 마르리 해마다 이별눈물을 보태는 것을(雨敭長堤草色多送君南浦動悲歌 大洞江水何時盡 別涙年年添綠波)
(차) 고려 중기 임춘(林椿)이 술을 의인화 하여 지은 '국순전(麴醇傳)과 돈을 의인화해서 지은 '공방전(孔方傳)'을 시작으로 하여 누룩과 거북을 각각 의인화하여 이규보가 지은 '국선생전(鞠先生傳)', '청강사자현부전(淸江使者玄夫傳)'을 비롯하여 대나무로 된 피서기구를 의인화하여 이곡(李穀)이 지은 '죽부인전(竹夫人傳)' 등과 지팡이를 의인화하여 승려인 식영암(息影庵)이 지은 '정시자전(丁侍者傳)'등이 있다.
(카) 세조가 왕위를 찬탈하는 등 조정이 명분의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하였다. 이에 따라 지배층이 상호 분쟁하면서 사화(士禍)가 붕당(朋黨)의 형태로 변화 발전하였다. 이 과정에서 출현한 세력이 방외인(方外人)이다. 방외인은 유학사상의 기초 위에서 삶의 지향을 세우지만, 현실의 정치권력에 비판적태도를 견지하고, 사회의 모순과 변질된 유학의 행태를 바로 잡으려는 저항 정신을 드러내고 있다.
(타) 조선 전기 한시사를 조감하면, 조선 초에는 소동파(蘇東坡)를 위시한 송시풍(宋詩風)이 주류를 형성하였고, 중종 연간부터는 송시풍 중에서도 특히 강서시풍(江西詩風)이 한때를 풍미하였다. 선조 무렵에는 국초부터 일부 시인들이 관심을 보이던 당시풍(唐詩風)이 시단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파) 그는 「남궁선생전(南宮先生傳)」, 「장생전(蔣生傳)」 등의 한문단편 소설과 국문 소설 등을 창작하는 한편, 『학산초담(鶴山雄談)』, 『성수시화(史詩話)』, 『국조시산(國朝詩刑)』 등 을 통하여 비평의식의 폭을 다양하게 보여주었다.
(하) 정조는 패관이어(神官俚語)를 담은 서적의 경우, 실용에 무의할 뿐만 아니라 그 내용이 사람의 마음까지 방탕하게 만든다며 불온한 것으로 간주하고 문체반정을 단행하였으며, 배격해야 할 서적의 대표적 사례로 ( )을(를) 지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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